국화. 23.5×33.5cm한지위에 수묵담채.가을이 깊어 가면 국화 향기가 더욱 진해진다. 초겨울까지도 추위 속에 피는 강인한 생명력과 소박하지만 고상한 국화꽃의 향기가 그윽하다.
가을이 깊어 가면 초목과 꽃들은 겨울 채비를 시작한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면 국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어릴 적 시골집에는 담장 밑 울타리 안팎과 장독대 한켠에 여름 내내 더위와 씨름하면서 크게 자란 국화가 바람에 쓰러져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다가, 가을이 다가와 다른 꽃과 풀들이 단풍들고 말라죽어 갈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피기 시작했다. 돌보지 않아도 심어 놓으면 겨울에도 죽지 않고 봄에 새싹이 다시 돋아나고 가을이면 잊지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가 너무나 예쁘고 믿음직스러웠다. 한 해 농사일로 지치신 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하듯 진한 국화꽃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화려하고 다양한 국화꽃 축제가 한창이다. 국화꽃 원산지는 중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들국화 중 하나인 산국, 감국이 조상이라는 설도 있다. 국화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품격 있는 꽃이다. 진한 향기를 머금고 있지만, 과하지 않게 깊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고고한 옛 선비를 닮았다.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피는 국화를 보면 예부터 사군자 중의 하나로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 품격 때문인지 예로부터 국화꽃은 한국·중국·일본 등의 옛 문헌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꽃이다. 신이 꽃을 만들 때 제일 나중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꽃이 바로 국화라고 하는데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모습과 그윽한 향기 때문이지 않을까. 국화는 귀한 약재로 사용되었고, 꽃은 술과 차로 잎은 나물로 쓰였다. 국화꽃은 우정, 헌신, 희망, 풍요, 절개, 장수 등을 상징한다.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른데 흰색은 성실과 감사, 노란색은 진실과 짝사랑, 보라색은 '내 모든 걸 그대에게', 빨간색 국화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올해는 가을이 가기 전에 향이 진한 국화주를 담가보려 한다.
한국화가 박진순 인천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인천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서 교수 활동. 1994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국립현대미술관). 2006 서울미술대상전특선(서울시립미술관). 2006 겸재진경공모대전특선(세종문화회관). 한국미술협회. 서울미술협회. 동방예술연구회 회원.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