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트라난 출판사 본사. 이곳에서 요하네스 홀름크비스트 대표를 포함해 3명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이지만, 32년간 88개 국가에서, 895명의 작가들의 책을 펴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email protected] 1901년 노벨상이 제정된 뒤 123년간 아시아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작가 한강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하다. 프랑스 한 나라에서만 16명의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과는 대비되는 수다. 최근 들어 높아진 한국 문화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 문학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세계적인 출판 시장의 균형추는 여전히 영미권과 유럽 문학에 쏠려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을 깨고, 32년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유럽과 영미권 국가 바깥에서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해 온 곳이 있다. 스웨덴 독립 출판사 ‘트라난’ 이다. 1992년 설립된 트라난은 20여년 전부터 한국 소설을 출판해, 현재까지 가장 많은 한국 작품을 스웨덴에 알린 곳으로도 꼽힌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2025년 스웨덴 출간 예정)’ 등 이미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은 작품 뿐 아니라 한국 문학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1970∼90년대 소설도 소개를 해 온 것이다. 지난 9일(현지시각) 스톡홀름에서 한겨레와 만난 트라난의 대표 요하네스 홀름크비스트는 “스웨덴의 대부분의 출판사들도 미국이나 서유럽 문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트라난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나라의 책들을 소개하기 위해 대형 출판사가 잘 다루지 않는 책들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라난이 2001년 처음 출간한 한국 소설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 스웨덴어판. 사진 장예지 특파원
트라난이 2001년 처음으로 스웨덴에 소개한 한국 문학은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 ‘젊은 날의 초상’(1981년 국내 첫 출간)’으로, 그 뒤엔 윤흥길의 ‘장마’(1973),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1994) 등을 냈다. 특히 2017년에는 ‘현대 고전 시리즈’ 모음집을 냈는데, 브라질·리비아 작가의 소설과 함께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1978)을 선택해 함께 선보였다. 홀름크비스트는 난쏘공을 모음집 도서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유럽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작 중 20세기 한국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을 소개하는 차원이었다”며 “개인적으로도 당대 한국 사회를 알 수 있어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트라난이 출간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트라난은 브라질·리비아 작가의 책과 함께 난쏘공을 ‘현대 고전 시리즈’ 모음집에 포함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지난 2020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작품도 트라난에서 처음 소개했다. 홀름크비스트는 “(백희나 작가가) 상을 받기 1년 전 우리가 그의 책을 처음 출간했다”며 “그는 도서관 사서와 유치원 교사들, 무엇보다 이 책의 독자인 아이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자랑스러움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트라난은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삐약이 엄마’ 등 그의 그림책 7권을 출판했다.
지난 2019년부터 현재까지 트라난이 스웨덴에서 출판한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책들. 트라난은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삐약이 엄마’ 등 그의 그림책 7권을 펴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세계적인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며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이 상은 아동 및 청소년 문학 분야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한강도 어린 시절부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좋아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에 방문했을 때인 지난 8일 그가 살았던 아파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아쉬운 건 한국 문학에 대한 높아진 관심에 비해 부족한 번역 자원이다. 트라난은 책의 의미를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각국 원서를 스웨덴어로 그대로 옮기는 직역을 고수하는데, 이런 작업을 할 한국어 번역자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홀름크비스트는 “출판 업계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요즘 한국 도서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커졌다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어에 대한 수요는 더 많아졌는데, 새 번역가를 찾는 게 늘 어려운 일이다. 스웨덴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트라난은 본사 직원이 3명에 불과한 소형 출판사지만 32년간 88개 국가에서, 895명의 작가들의 책을 펼친 단단한 역사를 가졌다. 중국 작가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15년 전인 1997년 처음으로 스웨덴에 그의 책을 소개한 것도 트라난이다. 아이티와 과테말라,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 등 서점에서 접하기 어려운 국가들의 작품을 알리는 일에 자부심도 갖고 있다.
홀름크비스트는 “우리는 단지 베스트셀러나 ‘잘 팔리는’ 책을 찾으려 한다기보다, 문학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책을 찾는 데 더 흥미가 있다”며 “다른 관점과 생각, 다른 스토리텔링 방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나라의 책을 읽는 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장예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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