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예극장 2관에서 진행된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공연’의 곰티재 호랑이편에서 이야기 할머니 배우들이 하트를 그려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칠순이 넘어 한국 옛날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게 되니 꿈만 같습니다. ‘할머니 힘내라!’라고 외치는 꼬마 관객의 응원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한예극장 2관에서는 유미남(74) 할머니를 비롯한 ‘이야기 할머니’들이 주연으로 나선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공연’이 진행됐다. 부모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은 ‘곰티재 호랑이’ ‘콩 한 알과 송아지’ 등 한국 옛날이야기를 뮤지컬·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로 재구성한 공연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최고령 배우로 참여한 유 할머니는 “밤 10시까지 하는 연습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전공인 한국 무용을 공연에 녹여냈다”며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뒤 앞다퉈 내 손을 잡으려 하는 걸 보며 ‘해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주관하는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공연’은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에 참여한 할머니 16명이 전국 7개 도시를 돌며 한국 전통 이야기 융·복합 순회공연을 펼치는 사업으로 올해로 2년째를 맞았다. 전통문화의 세대 간 전승을 위해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배우로 발탁되기 위한 할머니 간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8월 2기 배우 16명을 선발하는 데 전국에서 총 58명이 지원해 평균 3.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연에 참여한 할머니들은 과거 지상파 방송국에서 성우활동을 하거나 연극을 전공했던 이들도 있어 프로 배우에 비견되는 연기력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다. 과거 KBS 성우로 일했던 홍영란(69) 할머니는 “남편 사업을 돕기 위해 방송국 일을 그만두며 경력 단절을 겪었는데, 실버 배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며 “공연에 몰입하다 보니 나이를 잊고 다시 젊어진 느낌”이라고 활짝 웃었다.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방인혜(67) 할머니 역시 “어릴 적 배우의 꿈을 꿨지만, 27세에 결혼하며 활동을 접었는데, 40여 년 만에 무대에 서니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며 “공연이 끝난 뒤 연출가와 그날 부족했던 점을 복기한 뒤, 다음 공연 연기에 변화를 주는 등 무대에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공연’의 만족도는 98.3%에 달한다. 또 관람객 중 41.4%는 주변인 추천을 통해 극장을 찾는 등 공연은 입소문을 타며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16년간 전국 유아 교육기관에서 옛날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줬던 이야기 할머니들이 주인공으로 나선 것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이날 공연을 보러온 한 관객은 “공연 중에 나왔던 노래가 너무 재미있고 중독성이 있어서 저절로 따라부르게 된다”며 “할머니들이 식사를 든든히 하시고 건강을 챙겨 이런 공연을 더 많이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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