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7일(현지시간) 시리아 두마시에서 정부군의 화학가스 공격이 벌어진 뒤 시리아 민방위 화이트헬멧 구조요원이 의식을 잃은 한 아이를 안고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사드 정권, 헬기로 아파트에 살포
방공호까지 침투…최소 43명 숨져
내전 중 300건 이상 화학무기 공격
“총알과 탱크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화학가스는 피할 수 없었다. 그건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도시 두마 주민 압둘하디 사리엘(64)은 6년여 전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2018년 4월7일(현지시간) 도시 상공에 정부군 헬리콥터가 떴다. 주민들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반군의 거점인 동(東)구타 지역에 위치한 두마는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약 5년에 걸쳐 정부군의 포위 공습이 이어진 곳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시리아 공군 헬리콥터에서 노란색 원통형 물체 두 개가 떨어졌다. 하나는 한 아파트 최상층 지붕을 뚫고 가정집 침대 위에,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아파트 발코니에 떨어졌다. 폭발음은 평소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쉿쉿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황색 연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염소가스였다.
염소가스는 사린가스와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내전 기간 자국민에게 사용한 독성 화학물질이다. 염소는 신경작용제인 사린에 비해 독성은 비교적 낮지만, 대량으로 사용될 경우 폐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등 치명적이다.
그날 녹황색 가스는 곧 건물 지하에 있는 방공호까지 가라앉았다. 건물 두 곳에서 최소 43명이 가스에 질식돼 목숨을 잃었다. “그날 지하실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사람들의 몸은 검게 변했고, 그들이 입은 옷은 녹색으로 변한 채 타버렸다.” 사리엘의 말이다.
24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알아사드 정권이 반군의 공세에 밀려 지난 8일 마침내 붕괴하면서 내전 기간 독재 정권이 자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각종 잔학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도 서슴지 않으며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렸던 알아사드 전 대통령이 러시아로 도피한 뒤, 그동안 보복이 두려워 숨죽여 왔던 생존자들이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14일(현지시간) 전했다.
염소가스통이 떨어진 건물 반대편, 더 높은 층에 살았던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리엘은 시리아 정부가 사건 이후 주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화학무기 감시 국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현장조사가 임박하자, 생존자들에게 ‘사람들이 먼지와 연기 때문에 질식해 죽었고 독가스 살포는 없었다’는 증언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염소가스 공격 이튿날 몸에 물집이 잡히고 입에 거품을 문 채 숨진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며 세계의 공분을 샀으나, 시리아 정부는 줄곧 공격 책임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OPCW는 현장 샘플조사 및 인터뷰 등을 토대로 시리아 정예군이 두마 주민들을 상대로 독성가스 공격을 자행했다는 내용의 공식 조사 보고서를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내전 기간 알아사드 정권이 시리아에서 300건 이상의 화학무기 공격을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2013년 구타지역에서 사린가스 공격으로 1400명 넘게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며 국제사회의 비판이 빗발치자, 알아사드 정권은 OPCW에 가입하고 남은 화학무기를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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