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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키드>의 엘파바(오른쪽)와 글린다는 외모와 취향, 성격 등 모든 게 다르지만 결국 친구가 된다. ⓒ유니버셜픽처스 제공
“나는 배멀미를 하지 않았고, 어릴 때 풀을 먹지 않았어요.” 엘파바가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을 향해 익숙하다는 듯 자기소개를 한다. 글린다는 그런 그에게 콕 집어 말한다. “너, 초록색이네.” 먼치킨랜드 영주의 맏딸로 태어났지만 피부가 초록색이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엘파바에게는 감춰진 마법의 힘이 있다. 동생의 대학 입학식에 참석했다가 마법 능력을 인정받아 함께 입학하게 되고 자신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다른 룸메이트 글린다를 만난다.
초록 마녀 엘파바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화 〈위키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북미에서만 개봉 첫 주말 사흘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1억1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브로드웨이 작품을 각색한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이고 〈겨울왕국〉의 오프닝 수익을 뛰어넘었다. 미국 전역에서 영화 OST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SNS로 〈위키드〉를 보기 전과 후를 기록한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11월20일 개봉한 이후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호평이 이어지며 1년 뒤 개봉을 앞둔 〈위키드〉 파트 2를 향한 기대감이 벌써 커지고 있다.
영화의 원작인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올린 초연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전 세계 6000만명 이상이 관람하며 수많은 고정 팬을 거느린 작품이다. 토니상, 그래미상 등 100여 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1900년 L. 프랭크 바움이 발표한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이어받는다. 1995년 미국 소설가 그레고리 매과이어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서쪽 마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출간했다. 시점은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기 전이다. 사악하다고 알려진 초록 마녀 엘파바가 실은 약자의 편에 서서 마법사의 독재에 대항하는 인물이며, 착한 금발 마녀 글린다는 내숭이 심하고 자기중심적 면모가 강한 캐릭터다. 어긋나기만 하던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성장하는 이야기다.
매과이어는 원작 소설을 쓸 때부터 특정 배우를 상상하며 썼다고 밝혔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출간 후 일주일 만에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지만 바로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니버설픽처스가) 남자 주인공이 없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기 위해 1억 달러를 지불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뮤지컬이 먼저 만들어졌고, 원작의 인기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유니버설픽처스는 분장으로 혹평을 받은 〈캣츠〉를 제외하고는 〈레미제라블〉과 〈맘마미아〉 등 뮤지컬 영화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위키드〉의 감독 존 추가 원작 뮤지컬을 본 건 2003년, 영화를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이다. 훗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나우 유 씨 미 2〉를 연출한 그는 어린 시절 〈사운드 오브 뮤직〉 〈사랑은 비를 타고〉 등 뮤지컬 영화를 보며 성장했다. 〈위키드〉는 그가 본 공연 중 가장 영화 같은 작품이었다. 이후 “20년 동안 〈위키드〉를 쫓아다녔다(〈뉴욕타임스〉 인터뷰)”. 존 추 감독이 에이전트를 통해 제작사에 〈위키드〉의 영화화를 문의할 때마다 ‘감독을 정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연출을 맡기로 한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중도에 하차했다. 마침내 그에게 기회가 왔다.
“나도 녹색인으로서의 경험이 있다”
뮤지컬의 오랜 팬이었던 존 추의 〈위키드〉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원작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원작과 다른 각색과 캐스팅을 두고 말이 많던 디즈니의 실사 영화와 비교하며 ‘원작을 배반하지 않는 잘된 각색의 예’로 〈위키드〉를 꼽는 이들도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각색이 있었지만 모두 무대 공연을 대형 스크린에 맞게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작에 충실하되, 매체의 변화로 꾀할 수 있는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대 위에서만 노래하던 엘파바가 들판이나 마법의 숲에서 열창하는가 하면 천장 위로 물고기 떼가 지나가는 무도회장, 원통을 활용한 군무를 보여주는 도서관, 에메랄드시티 등을 화려하게 구현해 시청각적 재미를 추구했다. 영화의 피날레 격인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를 부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무대의 제약에서 벗어난 엘파바가 첨탑 위로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석양의 하늘을 날아오른다. CG와 세트의 적절한 조화가 빚어낸 장면이다.
고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친숙하다는 점도 흥행을 돕는 요인이다. 그러면서도 메시지는 현재적이다. 글린다는 영화 초반에 묻는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걸까? 아니면 악함이 그들에게 강요된 걸까?"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동시에 상황과 여건이 한 개인을 어떻게 몰아가는지 생각하게 한다. ‘Wicked’는 ‘사악한’이라는 뜻이다. 엘파바가 정말 사악한가? 소수자를 대변하는 엘파바를 보며 관객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엘파바 역의 배우 신시아 에리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피부가 초록색이라 괴롭힘을 당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유대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흑인 여성들이 넓은 공간에 혼자만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존 추 감독 역시 “나도 녹색인으로서의 경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나는 거품 속의 소녀 글린다이기도 하다. 매우 특권을 누려왔지만 거품을 터뜨리고 어려운 일들에 맞서기로 결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분홍색 소품으로 온통 치장한 글린다 역은 미국의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맡았다. 각각을 상징하는 핑크와 초록은 보색이지만 또 의외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스스로도 소수자인 엘파바는 영화에서 차별받는 동물들을 위해 싸운다. 오즈는 원래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사회였다. 차별이 확산되면서 동물이 언어와 직업을 잃게 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오즈의 마법사에게 동물을 구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영 뜬금없는 얘기 같지는 않다. 원작을 기준으로 하면 30년 전 이야기이지만, 모든 게 때맞춰 도착한 느낌이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차별과 혐오의 악의가 요란한 시대에 〈위키드〉는 모른 척하지 않는 용기야말로 서로를 구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라고 밝혔다.
〈위키드〉를 좀 더 의미심장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얼마 전 대선을 치른 미국에서는 오즈를 ‘분열된 시대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낙담한 민주당원들에게는 위안이 될 만한 작품이다. 두 여성이 무가치한 통치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위키드〉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적대적인 우정의 판타지, 즉 적이 친구가 되고, 깨진 세상을 고치기 위해 힘을 합쳤다는 사실이다(〈뉴욕타임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의외로 아무 음악도 흘러나오지 않는 무도회장 신이다. 슬픔을 승화시키며 혼자 위태롭게 춤추는 엘파바를 보던 글린다가 그의 동작을 따라 한다. ‘우정의 판타지’가 이 순간만은 가능해 보인다.
임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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